작지만 큰활동 2009.08.30 23:38 |


대망의 2009장애민중연대 현장활동이 시작되다!!’

09장활엔 누가누가 왔을까? 궁금궁금~

 


2009 장애민중연대현장활동의 기조는 ‘대학-사회와의 유쾌한 동거동락 :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대학 만들기’였습니다. 그리고 실천의제로는 ‘장애인고등교육권 확보’와 ‘사회서비스 시장화 저지’로 정했지요.

  사실 기조를 저렇게 길게 정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존재합니다. 그 중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쳤던 것은 메이데이 전야제때 대학으로 들어온 노동자를 학생이 내쫓았던 K대학 사건이었지요.

 대학과 사회적 의제가 단절되고 대학의 시설과 문화는 점점 지역 사회와는 배타적이고, ‘자격 있는 자’로 정의된 자들에게만 독점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노동자들에게 내건 ‘우리들은 당신들을 초대하지 않았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마주 보았을때, 우리는 먹먹함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초대받지 않았지만 찾아갈 수 있다’는 불굴의(?)정신으로 대학을 찾아가서 무작정 camping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점점 소유화되고 사회와 배타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대학에 우리가 들어감으로서 쏭쏭 숨구멍을 틔우자~라는 비장한 각오로 말이죠.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우리의 ‘막무가내 camping'의 대상 학교로 선정된 것은 서울대와 한양대였는데, 우리가 방문하기로 한 것을 그들은 알라나~모를라나~ㅋ

                 

▲ 두명의 공동총책의 대비되는 모습 :초조하고 근심스런 모습의 종운과 별 생각 없이(?) 여유로운 원재

 첫째날 프로그램은 사회대에서 내내 진행됐습니다. 사회대에 장애인권연대사업팀이 있어, 장애인들의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은 사회대 경비아저씨는 우리를 그냥 그러려니~쳐다봅니다.ㅎ 

* 발대식
 

매년 발대식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장애민중연대현장활동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해당 연도의 기조 발제, 그리고 프로그램 소개 등을 합니다.

▶ 지금 공동총책인 원재가 발대식의 발제를 맡은 것 같은데, 옆에 있는 속기록을 보면 약간 말이 꼬이는 것 같죠?ㅋ 하지만 진지하고 열정적인 모습이 돋보입니다!

 

 

* 몸풀기 마음열기 

 


자~이름도 생소한 장활에 참가한답시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참가자들한테 딱딱한 발대식부터 들이대니 이거 참 분위기가 난감합니다요~긴장되고 어색하면 우리도 모르게 몸을 조금씩 움직이게 되죠?

 몸풀기 마음열기 시간은 이렇게 참가자들이 함께 몸을 움직이고 부대끼면서 서로에 대한 어색함과 서먹함을 조금씩 떨쳐내고 마음의 빗장을 여는 첫 도약이 되는 프로그램입니다.

▲ 지금 장활기획단의 기획국을 맡고 있는(유상무 상무 놀이는 아님;;) 재석이 몸풀기 마음열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재석 왈, ‘몸풀기 마음열기프로그램 끝내주게 진행했어요~사람들이 너무 즐거워하고 하나도 안 어색해해~’라고 자랑을 하던데, 사진에 찍힌 사람들 표정에 아직 어색함이 서려있는 것은 왜그럴까?--;


 

* 자치규약 발제 

  현장활동은 5박 6일동안 함께 먹고 마시고 활동하기 때문에 ‘일시적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구성원이 배제,소외,대상화 되거나 폭력에 노출되지 않도록, 우리 감수성의 더듬이가 쑥쑥 자라나야 할 필요가 있지요.

 반성폭력
자치규약과 반장애폭력 자치규약은 이렇게 성평등한, 장애평등한 현장활동을 만들어가자는 우리 스스로의 약속입니다. 올해는 반성폭력 주체인 해정과 반장애폭력 주체인 선하가 각 자치규약에 대한 간략한 소개 및 발제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러한 자치규약을 각 참여자들이 스스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도록 ‘모둠별로 자치규약에 대해 여러 가지 형식으로 표현해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대부분 단막극으로 진행되었는데요~ 모둠별로 상황극을 아주 재밌고 맛깔나게 연출했답니다. 하지만단막극의 형식으로 자치규약을 소화해내는 것은 그 과정과 단막극을 재현하는 상황에서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이 있어, 아마 내년에는 다른 방식을 고민해보지 않을까 싶네요.


▲ 모둠별 상황극 발표 중


또한
규약에 맞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예시를 좀 들어줬으면 참가자들이 이해하고 소화하는데 좀 수월했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장활동 중간에 자치규약을 점검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더 가지기도 했답니다.  

 두두둥~모든 프로그램을 마친 첫째날 우리는 어디서 잤을까요? 
바로 서울대 학생회관 계단 위 통로에 4~5개의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답니다.

 텐트에서 함께 잠을 자기 위한 과정과 조건은 너무나 험난했어요. 우선, 휠체어를 탄 장애학생이 텐트를 치는 장소인 학생회관 1.5층으로 접근하려면 200미터 가량을 뺑 돌아 달려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뿐만 인가요? 학생회관 1.5층에서 화장실이 있는 1층이나 2층을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하니까 다시 그 200미터 가량을 뺑 돌아 1층으로 와서 화장실을 갈 수 밖에 없답니다.(1.5층, 2.5층 등 반층으로 된 floor에는 엘리베이터 운행이 안됨)

 그니까 텐트에서 함께 자면, 자다가 화장실도 못가거나 화장실 가다가 중간에 실례를 하거나, 화장실을 다녀왔는데도 다시 화장실에 가고 싶은 욕구가 생길 정도의 기나긴 거리와 시간을 감당해야 하는 거지요.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그나마 학생회관에 있는 엘리베이터는 ‘에너지 절약’의 차원으로 밤 10시 이후~새벽 5시까지는 운행을 하지 않고 잠궈 버립니다. 지체장애인에게 엘리베이터는 ‘편의’를 돕는 시설이 아니라 이동하기에 ‘필수’인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걸어다니는 사람은 걸어서라도 오를 수 있지, 우리들은 밤 10시 이후에는 꼼짝없이 숙소가 있는 6층에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갇혀있는 신세란 말입니다. 10시 이후에 6층에 올라가는 것도 그나마 친절했던 학생회관 경비 아저씨의 눈치를 받으면서 올라가야 하는 콩쥐 신세가 된거지요.

 근데, 학생회관에 그 커다란 텐드를 4동이나 쳤는데, 아무도 뭐라하지 않고 무사했냐구요? 그건 둘째날 이야기에서 알려드리지요. to be continued....ㅋㅋㅋ



출처 http://club.cyworld.com/jangwhal 김진영 님의 [09장활소식지]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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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활동 2009.08.20 10:47 |
2009, 여름, 장애민중연대현장활동
Higher than the heat in the summer!

"대학-사회와의 유쾌한 동거동락 : 돈으로 살 수 없는 대학 만들기"



 8월 13일 장활 넷째 날, 장애민중연대현장활동(이하 장활)은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셋째 날 저녁에 있었던 일부터 써보고자 한다. 

  1박 2일을 보건복지가족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하기로 했던 계획이 폭우로(아마도) 무산되자 잘 곳이 없어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사무실에 가게 됐다. 전장연 관계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경찰 버스에 둘러 싸인 채 천막에 노숙하지 않게 되서 다행이다 ㅠㅠ 라고 생각했다. 장활에 처음 참가하는 것이니만큼 아직 마음은 두근두근콩닥콩닥.

 전장연 사무실에서 오고갔던 이야기는, 다음 날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니 퍼포먼스할 내용과 선전물로 쓸 피켓과 포스터의 내용을 회의하고 그걸 만들자는 것이었다. 조별로 나누어서 각양 각색의 도화지와 매직, 크레파스를 주면서 하는 말. "시간이 없으니 밤 10시까지 하세요." 헐, 지금 시간을 보니 9시 40분. 장난해?

 다음날 기자회견에 쓸 선전물 준비로 여념이 없는 모습.

 서로 의견을 내놓고 다듬고 고쳐나가 최종적으로 퍼포먼스 피켓과 포스터의 내용을 정하는데 30분 이상 걸렸다. 그리하여 피켓과 포스터를 그리고 있는데 대표 왈. "10시 30분까지 해주세요T_T" 그러다가 또 몇십분 뒤, "늦었으니 이번에는 정말! 11시까지 해주세요!" 이렇게 점점 연기되어 11시 반에 모든 작업이 끝났다. 우리가 작업했던 사무실에서 잠을 자야 되니까. 아직 마무리가 안된 작업은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하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김밥 한줄과 우유로 아침을 먹고있는데 기획단 한 분이 오시더니, 
  "이따가 기자회견에서 각 대학에서 한 사람씩 발언을 할 것이니 준비해주세요."
  "네엣?!" 
아니 그런건 전날에 미리 말해주지! 허겁지겁 노트북에 30분만에 기자회견에 발언할 내용을 타이핑했다. 

 오전 10시 경, 정부중앙청사에 이동한 나는 조금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때문이었다. 정문이 아니었어? 말이 기자회견이지 이 활동이 효과가 있을까? 교육부에서 우리의 외침을 들어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본 경비원은 열려 있던 대문을 닫더니 큰 자물쇠로 아예 들어올 수 없게 잠궜다. 마치 '너네들의 외침은 이 건물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것 처럼...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한 분이 말해주셨다. 이 기자회견이 끝나고 정문으로 가서 성명서(맞나;)를 교육부에 제출 할 것이고 예전에도 그렇게 했었다고. 그제서야 나는 조금 맘을 놓을 수 있었다.

이에 관련된 기사가 있어 링크한다.  
에이블뉴스 - 장애학생 예산도 삭감해버린 MB 정부(새창)


 우리는 정부중앙청사 후문에 자리를 잡고 그 전날 열심히 준비한 피켓과 포스터를 들었고, 기자회견은 시작되었다. 

 각자 한 사람씩 나가 발언을 하고, 내 차례가 되어 발언하는데 앞에 나서서 남 앞에서 말을 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없는지라 손과 발이 덜덜 떨렸다. 날씨가 정말 더워서 머리에는 땀이 흐르는데 몸은 으슬하게 덜덜덜.


내가 발언했던 내용 중 일부를 적어본다.

- 도우미가 없는 학교 생활이 어땠을 것 같나요? F를 3개 받기도 했어요. 저는 오히려 F가 4개가 아니라서 학사경고를 면한 것에 감사해야 했지요.
- 편입하고 난 후, 완전 천국이었어요. 문자통역에 수화통역이 있었고 '아 이게 공부라는 거구나!' 내 나이 23세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말이 되나요, 나이 23세에 처음 공부란 것에 재미를 느낀거예요.
- 저는 이런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2년 전(편입 전 다닌 학교)보다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됐습니다. 이렇게 더욱 큰 꿈을 꿀 수 있게 된 것은, 비장애인들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들을 수 있는' 권리를 얻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조별 발표나 자기소개 때도 늘 빨개지던 얼굴은 다행히 빨개지지 않았다.

 

하나, 교과부는 장애학생도우미제도 예산삭감에 대한 긴급대책을 마련하라!
하나, 교과부는 대학의 장애학생지원센터 세부운영 사항에 관한 지침을 마련하라! 
하나, 교과부는 각 대학의 학칙에 장애학생 편의지원 사항의 규정 여부를 확인하고 관련 지침을 마련하라! 
하나, 교과부는 법에 명시된 조항을 실행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하라!
하나, 교육과는 장애인대학생을 위한 고등교육지원을 확대·강화하라!


  현재 218개 대학에서 3,800명의 장애인대학생이 대학에 재학 중에 있으나 이들 장애인대학생을 위하여 도우미 지원제도 이외에 국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별도의 편의지원 대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이 3800여명은 어떻게 공부하란 말인가? 왜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꿈을 키워나갈 우리를 이렇게 거리로 나오도록 만들었는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시간 30분 동안의 기자회견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아마 실감나지도 않을 것이고, 자기와는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단지 나는 여러분 바로 근처에 자신의 권리를 애타게 외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당신의 추천이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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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군 2009.08.22 02:42 Address Modify/Delete Reply

    수고 많이 하셨어요. 화이팅!

    • 나노아 2009.08.22 16:2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감사합니다 ^ㅡ^
      알군 님 블로그에서 본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열심히 해야겠지요.^^

  2. koozijung 2009.08.23 08:1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좋은 활동을 하고 계시네요. 화이팅입니다!!

  3. 찌니 2009.09.01 15:02 Address Modify/Delete Reply

    보니까 참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뭐지,, 여튼 수고 많았다~

작지만 큰활동 2009.08.06 20:20 |

 


어젯 밤, 장활 신청단에 참가신청서를 내고 왔다.
나는 내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 관련 현장활동에는 한 번도 참가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이 곳에 신청서를 내게 된 것은 학교의 영향이 매우 컸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충남 천안에 있는 나사렛대학교로, 장애학생들의 천국이라 불리우는 재활복지특성화 대학이다. 몇천만의 학우들 중 300여명이 장애학생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장애학생이 다니고 있다. 그만큼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복지가 좋다는 증거다. 올해 쌍용(나사렛대)역이 개통되면서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계단 개설으로 대학과 장애인 사이에서 마찰이 있지만 이것은 다음에 포스팅하기로 한다.

  평소에 거리를 돌아다녀도 그렇게 보이지 않던 장애인들이 이 곳 대학교에서는 엄청 많다. 강의시간에 맞춰 기숙사 엘리베이터를 타면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이나, 다른 사람이 이미 누른 버튼을 다시 한번 누르는 시각장애인을 간혹 볼 수 있다. 기숙사 정문으로 나와 광장을 가로질러 가고 있으면 가는 길에 척 봐도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지적장애인들이 웃으며 이야기 하고 있다. 그 너머 벤치에는 수화를 쓰는 청각장애인들이 보인다. 뭐가 그리도 재미날까? 가서 아는 척 하고 싶지만 그들은 못듣기에 소리내어 부를 수도 없다. 그래서 그냥 다음에 인사하자 생각하고 강의실로 바삐 걸음을 옮긴다. 

  장애활동이라는 것에 참가하게 된 것은 결정적으로 어느 전공수업의 조별 발표때였다. 현재 장애인 법으로 15가지 장애가 있는데 15개조로 나누어 그 장애에 대해 조사하고 발표를 해야 했다. "1번 지체장애 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라" 해서 두세명씩 선정하는 과정에서 나는 초등학교 동창 중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친구가 생각나서 지적장애를 선택했다. 나와 같이 문자통역을 받던 청각장애 동생 S도 나를 따라 같은 조가 됐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그 전공수업에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동생이 한명 있었는데 그 동생이 조별 주제로 '지적장애'를 선택한 것이다. 그 동생에게는 미안하지만 칠판에 동생의 이름이 지적장애 부문에 적히는 순간 속으로 생각한 것은 아... 발표과제 준비를 S와 둘이서 해야겠구나... 이었다.

  발표를 위해 나, S, 동생 셋이서 조별 모임을 가졌다. 내가 가져 온 지적장애 관련 자료책을 보던 동생은 책을 덮더니 한마디로 일축했다.

  "언니 이거 너무 어려워요.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ㅠㅠ" 
  (그럴줄 알았다...)
  "괜찮아, 언니가 자료 잘 찾아갖구 쉽게 쓰고 너에게 보여줄게~"
  "네~엡!! ^▽^"

 뭐가 그리도 좋아서 방긋 웃는지... 그래도 심성은 착한 동생은 나와 S를 챙긴다고 가방 속에서 과자를 꺼내 준다. 이런, 난 언니로서 뭐 하나 사주지도 못했는데... 새삼 민망해졌다.

  "이걸 어떻게 요약해야 하는건지 모르겠네요. 너무 길어요."
  "그러게. 이거 봐봐. 이거 이 책에는 있는데 저 책에는 없네. 개정판이라서 내용이 바뀌었나봐."

S와 함께 책을 뒤져보며 이야기 하는데, 이를 지켜보던 동생이 한마디 거들었다. 

  "어, 언니 이 책에는 없어요?"
  "응. 이 책에는 없네. 저 책에는 있는데..."
  "그럼 이 책은 맞아야겠네~ 에잇!"
  "응~ 그러게~ 정말 맞아야 되겠어~(책표지를 찰싹~)"
  "헤헤 언니, 저 책은 있으니까 잘한거죠?"
  "응~ 맞아~(책표지를 쓰담쓰담..)"

 결국 그 날, 조별 모임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정도로 발표 내용 정리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동생을 좀 더 알 수 있었고, 좀 더 가까워지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발표자료를 정리하면서 이게 잘 된건지 아닌건지 잘 몰라서 반복하여 수정하고 검토하기를 수차례.. 시간은 흘러 발표 당일이 다가왔다.
  나는 발표를 앞두고 걱정이 됐다. 수화를 잘 몰라 말(구화)로 대화를 하는 청각장애를 가진 두 학생, 지적장애를 가진 한 학생. 장애인으로만 구성된 조에서 발표를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발표 준비를 하면서 지적장애인은 단지 지능이 조금 떨어질 뿐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 동생이 할 수 있는 쉬운 부분의 발표를 맡겼으니 괜찮다. 하지만 나와 S는 수화로 발표를 하려니 수화를 모르겠고 말로 하자니 발음이 어설프고... 문자통역도우미에게 맡기려니 시험기간이라 못온다고 했기 때문에 남에게 맡길 수가 없다(그날 같은 수업 듣는 1학년들이 교대로 문자통역을 해주었다).
 에잇, 몰라! 우리는 발음을 못알아 들어도 PPT가 있고, 수업 듣는 애들은 지들이 알아서 듣겠지! 하고 S와 나는 서로를 북돋아주었다.

  드디어 발표! 그런데 왜 평소엔 다른 학생들이 발표할때는 머리의 가마가 몇개인지 다 보일정도로 고개를 푹 숙이던 애들이 우리가 발표할 때는 고개를 번쩍 들고 눈알 세척이라도 했는지 눈의 반짝임이 심상치 않았다. 아무래도 장애학생들만 준비한 조가 우리 조 밖에 없어서 그런가보다.

  밤새 준비한 PPT화면은 정말 순식간에 차르륵~ 넘어가고 S의 발표가 끝나고 내 발표가 끝나고(정말 더듬거렸지만 잘 넘어갔다ㅠㅠ) 동생의 발표 차례가 됐다. 동생은 앞으로 나가는 것이 긴장됐는지 아니면 부끄러웠는지 PPT 프린트한 것을 얼굴 앞에 가까이 대고 열심히 큰 소리로 읽었다. 마지막에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라고 했는데, 그걸 까먹고 머뭇거려서 S가 앞으로 나와서 대신 말하는 해프닝 아닌 해프닝이 있었지만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끝나자 큰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교수님은 발표 내내 미소를 짓고 계셨다.





  나는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다른 장애인을 '편견이 담긴 시선'으로 보았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에 조금이라도 나 자신에게 변화를 주고 싶었다. 이 활동이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의 디딤돌이 되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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